한국사회 줄세우기 토크쇼




'섹시한 뇌'의 기준이 영어 실력이었어? 난 몰랐지…



2015년을 사는 대한민국의 시간에 비춰 하나도 놀라울 것 없는 설정이라 씁쓸할 따름이다. 애초에 '뇌섹남'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이동진, 허지웅 등의 몇몇 평론가들에게 기대했던 것은 아이큐, 영어 실력, 카이스트 졸업장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예로 든 이 두 사람이 정말 섹시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고.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들고나온 온갖 요소들이 뇌를 '섹시하다'고 평가하는 기준이었던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동진이 서울대를 나왔다고 해서 "역시 서울대를 나온 영화평론가는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찬가지로 허지웅이 서울대에 비해 명성이 떨어지는 학교의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가 내놓은 평론의 가치가 깎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뇌가 섹시한 남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특정 그룹의 서열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인식되어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잘생긴 그리고 못생긴, 능력있는 그리고 능력없는(여기서 능력이란 '돈 많은 그리고 돈 없는'과 상통하는 차원의 의미) 정도의 기준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에 목을 맸던 대한민국 사회에 새로운 기준을 하나 만들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이동진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 평론을 쉬운 글과 말로 탈바꿈시켰다. 허지웅은 영화 평론가의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현상이나 정치적 흐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이들의 움직임들은 대체로 한국 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켰다. 예술영화의 대중화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거나, 영화를 현실 정치와 연관지어 물고 늘어지다가 치열한 토론의 장을 제공했다거나. 물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들의 글과 말이 모두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항상 재미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화려한 '스펙'표 주전부리의 향연 


'뇌섹시대-문제적 남자'는 하나같이 잘난 '껍데기'들로 테이블을 채웠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다. 전직 아나운서, 배우, 대학원생, 뮤지션, 그리고 뮤지션의 영역에서는 다소 빗겨갔다고 일컬어지는 아이돌. 이들의 '남다름'을 보여주려 시도한 구별짓기의 기준은 결국 그 흔한 '스펙'의 요건들이었다. 결국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한없이 초라해져 버린다. 


기존의 '뇌섹남'들이 해왔던 역할은 없다. 사회의 일면을 콕콕 찌를 수 있는 소재대신 테이블 위에 오른 것은 속 빈 주전부리들 뿐이다. 굳이 영어로 질문을 하는 의도는 모를 수가 없었지만, 그냥 모르고 싶었다. 더군다나 그 질문들에 '상위 몇 퍼센트가 맞추는 문제' 등의 전제를 갖다 붙인 것은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들은 누군가는 으쓱했을 것이고, 문제를 푼 누군가는 상위 몇 퍼센트에 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뿌듯했을 것이다. 이처럼 '문제적 남자'에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인정받는 것들이 모두 들어있다. 열등감을 강제하는 폭력적인 기제들 말이다. 


미국의 명문대, 서울대, 연세대, 카이스트, 아이큐 148, 중학교 때 토익 900점에 텝스 800점,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손에 꼽히는 공대 출신, 여기에 어느 순간부터 새로이 추가된 잘생긴 외모, 큰 키. 그야말로 정말 멋진 주전부리들이다. 당연히 맛도 꽤 좋을 테지. 

     

정말로 나는 누가 이상형을 물으면 '뇌가 섹시한 남자'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간만에 여러모로 설렜었는데 말이다. 그냥 타일러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읽는 편이 그러한 남자를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이장원이 천재든 아니든 상관없이 페퍼톤스라는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와 매력적인 랩 가사에 그때그때 감탄하고. 한국사회의 우울한 일면에 일조한 '스펙'표 주전부리는 하나도 안 섹시해서 먹다가 걍 체할 것 같다.




난무하는 서열화의 시대. 이 프로그램은 일조가 아니라 백조할 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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