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도리안 그레이프레스콜 후기

 

 

* 좀 늦은 프레스콜 후기. 기사로 나갈 줄 알았는데, 안 나가게 되어서 살짝 홀로 릴리즈


요약하자면 


① 이상하게 김준수 씨가 주연을 맡은 공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작품에 대한 평가에 앞서서 그의 연기에 대해 먼저 얘기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그러합니다. 저는 뮤지컬배우 김준수가 최대한 오랫동안 공연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심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이 분의 공연은 매 작품마다 만족스러워요. 심지어 저는 ‘천국의 눈물’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② 작품은 (초연이라는 점을 살짝 감안하고) 여러 가지 면을 통틀어 매우 좋았어요. 춤으로 극 전체를 장악하는 어두운 무드를 표현하려 한 것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무리 김준수 씨가 청초한 의상을 입고 선이 고운 무용을 보여줘도 그 움직임이 모두 ‘욕망’이란 키워드 하나로 묶이는 느낌이거든요. 그리고 이 욕망은 음산하고 어두워요. 


③ 하지만 중간에 급 오방신기 소환된 부분..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재연 때 빠졌으면 하.. 아니면 수, 수정이라도. 흑흑


④ 처음 뮤지컬판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배우가 최재웅 씨였기 때무네.. 두 사람이 만난 신을 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물론 박은태 씨는 언제나 목소리로 절 울리는 배우입니다. 또 보고 싶네요


⑤ 대형 창작 뮤지컬에 열심히 투자하는 씨제스. 좀 반갑습니다. 물론 저는 평소에 스토리 소스까지 국내 창작자의 것들을 가지고 나오는 회사들을 더 응원하긴 합니다. 그러나 이번 ’도리안 그레이’처럼 지극히 서구적이거나 ‘데스노트’처럼 지극히 일본식인 이야기들로 한국어 대사를 쓰고 관객을 자극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노력도 신나게(짝짝짝) 응원하는 바입니다.   

 

 




 

연출, 배우, 대본 모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오랜만에 균형잡힌 창작 뮤지컬이 탄생했다는 것에 큰 박수!

 

국내 창작 뮤지컬과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 중 더 가치 있는 콘텐츠는 뭘까. 뮤지컬 팬들이나 관계자들은 의미도 쓸모도 논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편의 공연을 평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웅장한 라이선스 뮤지컬이라도 허술한 스토리가 거슬리면 졸지에 속 빈 강정핀잔을 듣기 일쑤다. 반면 국내 창작 뮤지컬이라도 탄탄한 대본, 좋은 배우를 갖추면 더 우세할 수 있다. 그러니 어떤 편견도 갖지 말라는 얘기다.

 

, 이번 도리안 그레이에서는 창작 뮤지컬만이 가질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이 빛을 발했다. 라이선스 뮤지컬이라면 원작에 묶여 시도하기 어려운 도전적인 무대 연출이 가능했던 것. 여기에 꼼꼼하게 이야기가 채워진 대본과 배우들의 , , 연까지. 한 번쯤은 경기도 성남에 나들이 겸 관극 겸 다녀오기를 추천한다.

 


# 포인트원작 중심의 유려한 대본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순수함을 지닌 소년 도리안 그레이(김준수 분)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린 배질 홀워드(최재웅 분)의 친구 헨리 워튼(박은태 분)을 만나면서 나르시시즘과 쾌락에 빠진다. 무슨 이야기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고?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는 쾌락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겼다. 고통이나 슬픔을 육체적 쾌락으로 잊으려고 발버둥친다. 실제로 20세기 말 영국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는 피폐한 인간상들이 잔뜩인 셈. 따라서 간접적으로나마 그 시절의 방탕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뮤지컬이 지닌 흥미로운 장점이다. 주인공 도리안 그레이도 마약을 하고, 거침없이 살인까지 저지른다. 그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과 경멸을 느끼며 서서히 파멸해가는 중이다.

 

원작 소설에 담긴 것처럼 뮤지컬에도 오스카 와일드가 추구했던 유미주의 관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중들에 익숙치 않은 철학적 개념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어 어려울 것 같지만, 걱정할 것 없다. 전체적인 스토리 자체가 촘촘할 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푹 빠져 관객을 자연스럽게 극 속으로 유인한다.

 

 

 

 

# 포인트김준수, 또 한 번 변신!

 

김준수는 이 뮤지컬을 통해 유미주의적 인생관, 즉 인생을 미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즐기는 것에 중독된 소년 도리안 그레이를 연기한다. 앞서 김준수는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 역할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천국의 눈물’, ‘엘리자벳’, ‘드라큘라’, ‘데스노트등에서 실력파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딱지는 이제 그에게 무색하다. 광기 어린 천재, 형체가 없는 추상적 존재인 죽음(토드), 드라큘라 백작, 잔혹한 살인마까지 독특한 역할만 골라가며 연기했던 김준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초상화가 지닌 영원한 젊음과 자신의 영혼을 교환하려 드는 소년 역할은 결코 평범하지 않으니 말이다.

 

실제 도리안 그레이속 김준수는 데스노트당시 연기했던 엘이 지닌 잔인성과 괴기스러움이 무색할 정도로 강렬한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치광이, 살인마가 됐다가도 어느 순간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애처로운 나르시시스트로 변해 관객을 당혹케 한다. 특히 김준수의 특기 중 하나인 읊조리듯 뱉어내는 넘버는 이번 도리안 그레이에서도 감정이 최고치로 격앙된 모습을 표현하기 제격이라 반드시 눈여겨 보기를 추천한다.

 

헨리, 배질 역을 맡은 박은태와 최재웅은 도리안을 두고 양극단에 서서 매력적인 대립각을 보여준다. 박은태는 그럴싸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도리안을 쾌락의 길로 유혹하는데, 최재웅은 젊음은 순간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며 이를 막으려 애쓴다. 무대에 오른 세 사람은 치열한 논쟁과 기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불안을 느끼게 만든다.

 

 

# 포인트연출가 이지나, 도전정신 발휘했죠

 

이지나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국내 최고의 극 연출가 중 한 명이다. 그가 강력하게 추진해 완성됐다는 무대 뒤 스크린은 실제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도리안의 초상화가 추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이는 무용을 적극적으로 삽입한 독특한 연출과 더불어 기존 뮤지컬 신에는 다분히 도전적일 수 있는 요소. 관객들이 어떻게 느낄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비롯, 영화 같은 리얼리티를 반영해 완성했다는 영상이 간혹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흠이다. 2막에서 순수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특히나 아쉽다. 청명한 햇살 아래 서양식 의복을 입고 뛰놀던 동양인 남성들이 컬러 영상을 통해 등장하는 순간, 갑자기 아이돌 뮤직비디오 같은 장면이 연출되며 관객을 당혹케 한다. 하지만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듯해, 다시 한 번 적극 추천하는 바다. 대본 조용신, 작곡 김문정, 연출 이지나. 93일부터 102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공연.

 

사진=씨제스컬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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