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민, 우리가 몰랐던 요정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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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2016/05/26
이미지 ⓒ SM 엔터테인먼트




샤이니 팬덤에서 고유명사처럼 통용되는 태민의 별명이 있다면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요정’일 것이다. 이는 데뷔 초, 마른 몸과 작은 얼굴, 동그란 눈매를 지닌 태민이 마치 동화 속 요정처럼 아기자기하고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데서 비롯됐다. 막내라는 포지션이 주는 사랑스러운 가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투영시킬 수 있는 존재가 요정이라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였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 가수 태민은 더 이상 샤이니에 갇힌 어린 요정이 아니다. 이제 막 미니 앨범 한 장과 정규 앨범 한 장을 각각 발표한 그에게서는 성적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이한 힘이 보인다. 신화적 존재인 요정에게 성별의 구분이 없기도 하듯이. 예쁜 얼굴과 생물학적 남성성의 공존. 양성 혹은 중성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태민은 이조차도 거부하는 듯 보인다. 그는 애초에 성별의 개념 자체를 애매한 것으로 유도하고, 이를 통해 ‘태민’이라는 독립적인 자아를 확립해 가는 중에 있다.


‘아름다움’은 태민의 것이지 여성의 것이 아니다


솔로 앨범 콘셉트 포토나 뮤직비디오에서 발견되는 태민의 특질은 ‘구별’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태민의 질문은, ‘왜 ‘아름다움’을 생물학적 여성에게 쓰는 수식어처럼 가두려 하는가’이다. 아름다운 존재는 생물학적 혹은 철학적 성을 포괄할 수 있는 무경계한(borderless)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태민이든 누구든 말이다. 태민에게는 ‘나누다(別)’라는 개념이 무의미하다. 그가 보여주는 콘셉트에 대해 감히 ‘무성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다.







먼저 발표했던 첫 번째 미니 앨범 “Ace”(2014)에 실린 ‘Pretty Boy(feat. Kai of EXO)’를 예로 들자. 언뜻 보면 이 노래는, 예쁜 외모라고 해서 내 남성성을 폄하하지 말라는 외침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 곡의 가사는 공교롭게도 샤이니 멤버 중 가장 근육질 몸매에 굵은 얼굴선을 보유한 종현이 쓰지 않았던가.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육질의’, ‘굵은’, ‘거친’ 등의 형용사가 생물학적 남성에게 ‘사회적 남성성’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는 사실까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상과는 사뭇 다른 흐름이 읽힌다. 이 곡은 생물학적으로 성별을 분류하는 기준에 반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나뉜 ‘남성성’이 ‘여성성’을 비하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편협한 일인지 지적한다. 그것도 아주 직설적으로 비웃어가며. ‘예쁜 소년’이란 워딩을 애당초 곡 제목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중요한 것도 그래서다. 태민은 나르시즘적 시각으로 양성성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별 자체를 별것 아닌 대상으로 희화화시킴으로써 무의미하게 만드는 대담함을 보인다.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찬양하되, 이를 편협한 시각으로 ‘여성성’이라 인식하는 남성들에 대해 정면으로 날리는 반박이다. 당연한 것처럼 사회적으로 고정된 시각아래 통용되고 있는 ‘여성성’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 여기는 일부 남성들의 심리. 이 또한 태민에겐 하찮은 공격 대상일 뿐이다. 태민은 “난 네 머릿속 상상뿐일 걸”, “거기 터프가이 / 돌 같이 굳어 버린 어깨 힘 좀 빼”처럼 직접적으로 남성성이라 칭해지는 것들만 예리하게 골라 공격 대상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실컷 공격을 퍼붓고 난 뒤가 더 인상적이다. 태민은 “내가 너보다 멋진 면에는 이러이러한 게 있지”라고 주관적 남성적 상징 따위를 내세우며 더 우수한 성적 개체인 양 굴지 않는다. 거대한 신화적 존재로 자라난 요정은 안다. 굳이 좁아터진 세상에서 이런 식의 나누기가 얼마나 사소하고 부질없는 것인지. (덧붙이자면, 평소 젠더 이슈에 관심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종현이 실제 가사로 이런 가치를 구체화한 점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초를 압도해버린 요정, 성별 이분을 비웃다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 ‘괴도(Danger)’와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 ‘Press Your Number’ 뮤직비디오에서 태민과 함께 춤을 추는 댄서들은 하나같이 ‘마초’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를 지녔다. 그러나 정작 이들 사이에 서서 퍼포먼스를 지휘하는 인물은 종잇장처럼 얇고 가볍고, 예쁜 태민이다. 지극히 의도된 대비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회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추앙 받는 특질 위에 더 강한 존재로 군림하는 카리스마는 어디서 나오는가. ‘남성성’에 대비되는 ‘여성성’인가? 아니면 ‘더 강한’ 남성성? 그러니까, 태민은 대체 어떻게 이들을 압도할 만한 존재감을 지닐 수 있나? 정답은 “글쎄, 아무것도.”




‘괴도’, 성별 이분을 훔쳐간 태민

‘괴도’, 성별 이분을 훔쳐간 태민




이것이 요정 이태민이 괴팍한 후크 선장을 이긴 방법이다. “Press It”(2016) 앨범 속 태민은 팔을 하늘거리며 유연한 움직임을 강조한 동작 위주로 춤을 추지만, 뜬금없이 강한 힘이 필요한 동작을 서슴지 않는다. 성적인 구별이 무의미한, 미묘한 심미적 밸런스는 그렇게 유지된다. 여기에 앨범 전체에 걸쳐 동화적이고 몽롱한 분위기로 이어지는 가사, ‘Soldier’와 ‘Sexuality’처럼 일반적으로 남성(군대를 통한 사회화), 여성(남성을 향한 성적 유혹) 이분법처럼 나뉜 관심사를 소재로 차용한다. ‘벌써(Already)’ 같은 트랙에서 태민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집착의 주체로 묘사되는 여성의 스탠스를 그 스스로 꾸준히 취하면서도, ‘상남자’라는 타이틀에는 전혀 관심 없어 보인다. 성별 따위에 얽히지 않는 기묘한 피사체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주장에 아직도 공감할 수 없다면 ‘괴도’와 ‘Press Your Number’ 뮤직비디오를 반드시 챙겨 볼 것을 권한다. ‘괴도’에서는 여성의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태민의 것인 가녀린 상반신 누드가 오묘함을 자아내고, ‘Press Your Number’에서는 그가 애타게 찾던 “Girl”이 태민과 일체화되는 괴상한(!) 장면도 볼 수 있다. 두 성별이 합치되는 순간, 뮤직비디오 초반에 여성에게 총을 겨누고 위협적으로 굴던 ‘남성’ 태민이 결국 자기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는 점을 목도하게 된다.




태민 ‘Press Your Number’, 유약함-강함의 개념을 여성성-남성성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태민 ‘Press Your Number’, 유약함-강함의 개념을 여성성-남성성으로 상정하지 않는다.




이건 꽤 획기적인 시놉시스다. 성애의 대상이나 감금, 피학의 대상으로 여성을 상정하는 대신에 스스로 그 여성이 되어버리는 쪽을 택하는 것. 이렇게 모든 성적 양립을 자신 안에서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 태민은 물리적 퍼포먼스의 흐름을 바꾸는데, 이 순간을 기점으로 태민이 추는 안무의 흐름은 격렬하게 자유로워진다. 이제 알 수 있겠다. 집착하는 남자의 심리를 묘사했지만 결국 집착의 대상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푸른 장미로 둘러싸인 가운데 핀 아름다운 태민 자신인 것이다. 이때 태민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자아를 찾은 아리땁고 거친, 무성의 요정이다. ‘누난 너무 예뻐’의 요정은 정말로 진화했다.





◆ 사실 이런 접근이 가능한 것도, 태민이 '생물학적 남성'이기 때문이겠죠. 한계 아닌 한계입니다. 



이 원고의 8할은 2월에 작성했습니다. 편집장 미묘님과 태민을 해석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시작됐죠. 그런데 이 글이 빛을 보기 직전까지, 근래 몇 달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킬만한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글이 오독될까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가 담고자 했던 본래 해석에 과도하게 사회적 담론이 침투하는 것도 원치 않았고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제 원래 의도만큼, 혹은 그보다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태민에 대한 해석을 읽어주셨고, 이에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모든 '우월주의'처럼) 남성우월주의의 본질은 '남성적'이라고 보는 범주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모자라고 덜 떨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안에는 대표적으로 '예쁘다'는 워딩에 대한 극렬한 거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Pretty Boy' 속 태민(그리고 가사를 적은 종현)이 마초이즘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가장 극대화된 남성우월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라 봅니다. 남성성이라고 분류되는 호전적 성질(도전 의식, 강한 의지, 경쟁심 정도로 미화되죠)을 권력의 획득에 필수적인 요건으로 상정한 거죠. 결국 이 범주 밖에 놓인 언어들의 특성은 유악함을 상징하게 됐고, 여성들이 생물학적으로 '약하다'는 전제 덕택에 권력 중심부 바깥에 있는 용어들이 그들의 것으로 왔습니다. 예쁜, 상냥한, 다정한, 사랑스러운, 조심성 있는, 배려심 있는.. 


그러니 사회적으로 '여성성'이라 묶이는 수식어들이 남성에게 붙었을 때 (ex.예쁜 태민, 사랑스러운 태민 등), 그 수식어를 가져간 남성들은 마초들의 비웃음 대상일 수밖에. 하다못해 '마음이 예쁜 남자'라는 말도 잘 쓰지 않으니까요.


'예쁜 남자'는 여성을 자신들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부족하고 모자란' 대상으로 상정한 그들에게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이종이었던 셈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예쁘다'는 여성에 붙는 수식어라고 사회적으로 완벽히! 체화된 워딩이니까요. 마초이즘이 남성우월주의의 다른 말이고, 그것이 '여성성'에 대한 격렬한 거부를 하고 있고, 그 거부는 '모자라고 부끄러운' 것이란 생각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이렇게 생겨난 '남성성'이 '여성성'을 비하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편협한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자는 마초이즘이 여성을 밑으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젠더적 역할에 충실한 부류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글쎄.. 저는 여기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참. 남성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식어를 자기들의 것으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우월주의자가 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1. 하이 2016.06.09 04:53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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